후지 노쿠니 지구 환경사 박물관 관장 사토 요이치로
시즈오카현의 음식의 여행은 후지산에서 시작하자. 국도 100호선을 누마즈 방면에서 동쪽으로 달리면 미시마시의 남쪽 교외 근처에서 웅대한 하코네산의 서쪽 기슭이 정면으로 보인다. 그 등산에 걸리는 조금 앞, 도로 오른손에 카키타가와 샘물이 있다. 용수의 수량은 하루 500만㎥라고도 한다. 이는 후지산 주위의 모든 용수량(20만㎥)의 XNUMX%에 해당한다. 그 거의 전량이 카키타가와가 되어 남쪽으로 XNUMX㎞ 정도 흐르고 카노가와에 붓는다. 현 동부의 음식은 이 물의 혜택을 남기지 않고 받고 있다.
그 하나가 心太(그런데)이다. 이즈의 해안에서 채취한 천연 아마쿠사(텐구사)를 용수로 잘 끓인 것을 차게 해 굳혀 만드는 독특한 식감을 가지는 식재료로, 화과자의 소재에는 빠뜨릴 수 없다. 특히, 이것을 원료로 만드는 한천은 공기를 포함하지 않는 얼음처럼 무색 투명하고 도시에서는 혹독한 무렵에 이것을 얼음에 내놓은 것이다.
미시마 시가지에서 시미즈쵸 일대는 장어의 명점이 북적거리는 땅이다. 많은 가게가 구 국도 1호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별로 여기가 장어의 거처인 것은 아니다. 요리하기 전에 장어를 용수의 풍부한 물에 놓고 냄새를 빼는 것이다. 미시마의 용수는 미시마 용암류라고 불리는 지금부터 4000만XNUMX년 정도 전에 후지산의 분화가 만들어낸 용암류가 식어 굳어진 암반 아래를 흘러내리고 있다. 이것이 지표에 튀어 나온 것이 먼저 쓴 카키타가와 샘물을 비롯한 미시마 샘물군이다.
후지산은 약 10만년 전부터 분화를 반복해 생긴 성층화산으로 마지막 대분화가 지금의 아름다운 형태의 산을 만든, 화산으로서는 새롭게 산복의 식생도 미발달이다. 그 때문에 산복을 상시 물이 흐르는 하천은 없다. 이와 같이 산기슭에는 다수의 용수(군)가 보이며, 그 용수량의 총량은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일 50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지산 전체에 내리는 강수량은 토류카이치(2007)에 따르면 연 22억㎥이므로 하루에 환산하면 600만㎥가 된다. 그 83% 이상이 지하수가 되고 있다.
건조와 습윤이 동거하는 황세천 유역
미시마 용암류는 아이타카야마·후지산과 하코네산이 만드는 장엄한 U자곡을 남쪽으로 흘러내렸다. 이 용암류를 깎으면서 남쪽으로 흐르는 것이 황세강이다. 유역의 산의 크기를 생각하면, 불균형할 정도로 작은 강이지만, 그것도, 물의 대부분이 용암류 아래를 복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샘물이 있는 곳 이외의 땅은 물 부족으로 어지러웠다. 하코네 산기슭 쪽의 밑단시 후카라에는, 아시노호의 물을 잡는 깊은 용수가 1670년에 파고, 산자락의 논밭을 떠올랐다. 그 물은 지금도 농업용수 뿐만 아니라 생활용수나 발전에 사용되고 있다.
샘물은 황세천 상류 부근의 고텐바시와 고야마초에서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물뿌리기채'라는 아브라나과에 속하는 야채를 재배하고 그것을 절임으로 만드는 문화가 생겼다. 물을 뿌린 채소는 논의 뒷작으로 재배되어 겨울의 추위가 엄격해져 왔을 무렵에 후지산의 지하수를 올려 밭에 흘려 넣는다. 유채는 높은 암초로 재배되고 물은 갈대 사이에 뿌려집니다. 지하수는 일년 내내 온도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보온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지산의 샘물은 아이타카야마의 남쪽에 있는 누마즈시에도 솟아나고 있다. 누마즈 이치하라에 있는 다카시마 주조의 물은, 지하 150m에서 움켜잡은 후지산으로부터의 복류수라고 한다. 시즈오카의 물에는 드물고, 초연수의 물로, 이 물이 타카시마의 술의 특징을 형성해 왔다. 또, 급수 그 자체도 WASAN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어, 현내의 일식 요리사의 지지를 모으고 있다. 통통한 다시마 국물을 취하기에 능숙한 차를 끓이는데도 연수가 더 좋다. 시즈오카시 시미즈구의 젊은 조리인, 우치카이 료씨에게, WASAN을 사용한 냉차의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차의 떫은 맛을 거의 느끼지 않는 단맛과 우마미가 이긴 지금까지 없는 맛의 음료가 되었다.
후지산 서쪽 기슭의 물과 음식
후지산 기슭은 서쪽 기슭도 용암류로 덮여 있다. 서기슭을 완만하게 오르면서 고슈에 이르는 국도 139호선을 북상하면 후지노미야시내의 용암류의 말단에 접하는 근처에서 용암류의 말단에서 물이 솟아나는 용수군에 부딪친다. 나라의 천연기념물이며, 또 「일본의 폭포 100선」에도 선정된 「시라이토의 폭포」도 그 하나이다. 이 서쪽 기슭의 물도 지역의 식문화에 크게 관여하고 있다. 하나는 양분이다. 양성이 시작된 것은 1년 정도 전의 일. 용수는 수량이 풍부하고 수온이 일정하고, 게다가 암반이라는 천연 필터로 여과되어 미생물이 번성하는 유기물이 적다. 이러한 조건이 겹쳐 양식에는 편리한 환경이 갖추어졌다.
또 하나, 환상의 「젠토쿠지 식초」에 대해서 써 두고 싶다. 후지산 세계유산센터 오다카 야스마사씨에 따르면, 후지시 이마이즈미에 있던 히가시센인이라는 진언종의 사원에서는 ‘젠토쿠지 식초’라는 쌀초가 만들어졌다. 메이지에는 만들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에도시대에는 에도시 중에서 고품질의 식초로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조초에는 조주와 같이 대량의 좋은 물을 필요로 하지만, 히가시센원은 딱 후지산 용암류의 첨단에 있어, 지금도 남쪽은 절벽이 되고 있다. 또한 여기에서 동쪽으로 수백 미터 정도의 곳에는 마찬가지로 용암류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후지시의 용수군이 있다. 아마도 히가시센원에서도 좋은 물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젠 토쿠지 식초의 복각이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젠 토쿠지 식초를 사용한 요리가 여기서 산성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싶다.
그런데 후지산은, 수험도의 개조역 소각(엔노오즈누)이 열린 수험의 산이기도 하다. 헤이안 시대 말의 승말대(마츠다이)는 후지산 정상에 다이니치지를 세워 몇번이나 등산해 수행했다. 그 후도 후지산에서 수행하는 행자는 나중에 끊임없이 후지노미야시 무라야마에 후지산 흥법사가 놓여져 이곳이 무라야마 수험의 본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히가시 센인도 흥법사와 연결이 있었다고 하기 때문에, 젠토쿠지 식초와 무라야마 수험과는 어떠한 연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